2008년 06월 29일
나른한 그 여자
약간 놀라운 것은 여자가 놀라울 정도로 말을 느리게 한다는 점이었다. 그 말투는 유치원 선생같은 애교나 구연동화-난 그 특유의 과장된 발음방식이 싫다-같은 늘어짐이 있어 대화 도중 상대방으로 하여금 인내심을 가지고 집중하도록 만들었지만 다 듣고 나면 아주 많이 지루한 내용이라 결국에는 은근히(!) 화가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스타일이었다. 우리는 초면이었다. 여자는 예의 발랐고 침착했으며 무엇보다 나를 위해 많은 배려를 해 주었다. 그 여자는 항상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, '죄송하지만'으로 시작하는 청유형으로 말을 꺼냈다. '죄송하지만'이라는 말을 서두에 붙일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반복적으로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. 그럴수록 그 여자를 무시하게 되었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졌다. 난 그 여자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낄 수 없었기때문에 여자가 말을 할 때마다 새빨간 입술과 대조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검은 속눈썹의 갯수를 조용히 세고 있었다. 그것들은 마스카라 덕분에 파리 다리처럼 보였고 셀 수 있을 만큼 많이 뭉쳐져 있었다.
# by | 2008/06/29 00:33 | 피터팬 신경증 | 트랙백 | 덧글(0)


